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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28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金寧金氏家의 [백촌김선생유사(白村金先生遺事)], [실기(實紀)] 2秩, [속집(續集)], [金孝子實紀], [巖軒世稿], [金寧金氏世德續錄] 등 완질본 7종 12책 일괄
경매번호  128-242 시작가  40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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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金寧金氏家의 [백촌김선생유사(白村金先生遺事)], [실기(實紀)] 2秩,  [속집(續集)],  [金孝子實紀],  [巖軒世稿], [金寧金氏世德續錄] 등 완질본 7종 12책 일괄로 상태 대체로 양호하다.
<크기> 19× 28cm
<참고 1> 출품물 상세
ⓐ 백촌 김문기 선생의 [백촌김선생유사(白村金先生遺事)] 목판본 2卷 2冊 완질,

권두에는 崇禎三己未(1799)...長州黃昇源謹敍, 時戊寅日南至後學通訓大夫前行弘文館副修撰...平陽朴升鉉謹序, 권말에 上之三年癸亥(1803)孟夏...行司諫院正言姜時煥撰, 乙丑(1805)季夏不肖孫致鉉流涕謹識 등있다. 짝맞춤한 책으로 모두 퇴변색과 얼룩이 있으며 권2는 권두 본문 부분 적인 손상과 배접수리가 있다.  
ⓑ 백촌 김문기 선생의  [백촌선생실기(白村先生實紀)] 목판본 6권 3책 완질
권두에는 己巳(1929)淸明節眞城後人李中均 序, 平陽朴儀東謹序, 권말에 十六世孫[金]炯碩涕泣 跋이 있다. 퇴변색과 얼룩이 있으나 본문 상태는 양호하다.
ⓒ 백촌 김문기 선생의  [백촌선생실기(白村先生實紀)] 목판본 6권 3책 완질
권두에는 己巳(1929)淸明節眞城後人李中均 序, 平陽朴儀東謹序, 권말에 十六世孫[金]炯碩涕泣 跋이 있다. 상태 양호하다.
권말에 庚午(1930)季秋下澣十四世孫[金]淵錫謹跋이있다. 상태 양호하다.
ⓓ백촌 김문기 선생의  [백촌선생속집(白村先生續集)] 木板本 2卷 單冊
권말에 庚午(1930)季秋下澣十四世孫[金]淵錫謹跋이있다. 상태 양호하다.
ⓔ 金容柱가 편한 金孝子 金聲玉의 [김효자실기(金孝子實紀)] 石版本 4卷 單冊
ⓕ 金基述의 華岩遺稿, 金性洙의 靑軒遺稿 를 수록한 [암헌세고(巖軒世稿)] 石版本 單冊.
권두에 上章困敦(1960)... 金晦鎭의 序, 권말에 壬午(1942)... 申彦稷의 跋이 있다. 상태 양호하다.
ⓖ 金永一 編 [김녕김씨세덕속록(金寧金氏世德續錄)] 노루지 石版本 2卷 斷冊
권두에 花山權純命也時己亥(1959)之春三月上旬也, 권말에 己亥(1959)四月上浣後孫[金]永一述幷書가 있다. 상태 양호하다.
<참고 2> 김문기(金文起), 1399(정종 1)~1456(세조 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김녕(金寧).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 할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순(順)이며, 아버지는 증 영의정 관(觀)이다.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예문관검열·사간원헌납·병조정랑·의정부사인 등을 지냈다. 1445년 함길도도진무(咸吉道都鎭撫), 1450년에는 병조참의를 역임했다. 1451년(문종 1) 함길도도관찰사로 있을 때 안변·정평 등지에 둔전(屯田)을 설치했다. 공조판서 겸 삼군도진무에 오른 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1456년(세조 2)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 사육신과 단종복위를 계획한 뒤 병력동원을 맡았다. 그러나 김질(金)의 밀고로 사전에 발각되어, 모의에 가담한 사육신, 아들 현석(玄錫)과 함께 처형당했다. 사육신은 그뒤 남효온(南孝溫)이 쓴 〈추강집 秋江集〉에 육신전(六臣傳)이 실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뒤, 1691년(숙종 17) 복관되었다. 그도 1731년(영조 7)에 복관되었으며, 1791년(정조 15) 정조가 규장각과 홍문관에 명하여 〈어정배식록 御定配食錄〉을 편정(編定)할 때 삼중신(三重臣:민신·조극관·김문기)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금릉군 지례 섬계서원(剡溪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1977년 7월 국사편찬위원회는 사육신 문제를 논의한 끝에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顯彰)하고, 그의 가묘를 노량진 사육신 묘역에 설치했다. 그러나 종래의 사육신 구성은 변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