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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28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발굴 과정과 발굴 유물을 상세하게 정리한 일제시대 사진 41매 첨부 [양산 부부총 발굴 사진첩(梁山 夫婦塚 發掘 寫眞帖)]
경매번호  128-244 시작가  41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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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발굴 과정과 발굴 유물을 상세하게 정리한 일제시대 사진 41매 첨부 [양산 부부총 발굴 사진첩(梁山 夫婦塚 發掘 寫眞帖)]으로 보존 상태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크기> 각 15.2×11.7cm

<참고> [양산부부총(粱山夫婦塚)]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분묘.
사적 제93호인 ‘양산 북정리고분군’ 가운데 제10호분이다. 성황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온 구릉의 등줄기를 따라 연주상(連珠狀)으로 축조된 대형 분묘 중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원형분이다. 1920년 일본인 오가와(小川敬吉) 등에 의해 발굴되었다.
봉분의 지름은 27m, 높이 약 3m이며, 매장시설은 수혈계횡구식석실분(竪穴系橫口式石室墳)으로 추정된다. 장축을 동서로 한 장방형석실이고, 규모는 길이 5.49m, 너비 2.27m, 높이 2.58m이다.
동·남·북벽은 정연하게 수직으로 쌓아올렸고 큰 돌 7매를 가로 걸쳐 석실의 뚜껑으로 하였다. 석실 바닥에는 자갈돌을 깔았다. 안쪽 벽인 동벽에 붙여서 넓이 약 70㎝ 정도의 부장품구역을 설치해 토기류·마구류·무기류을 부장하고 있었다.
부장품구역 서단에 접해 높이 7.6m, 길이 2.8m의 석단(石壇)을 쌓아 올렸다. 이 상부에는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한 남녀 2구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다.
관대의 남반부에는 동쪽에서부터 금동제출자형관식(金銅製出字形冠飾)·금제귀걸이·유리제목걸이·은제허리띠·은제반지·금동제신발의 순으로 놓여 있었다. 시신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패도로서 삼루환두대도(三累環頭大刀)·방두대도(方頭大刀)가 놓여 있었다.
북반부에는 동쪽에서부터 은제관전립식(銀製冠前立飾), 금제귀걸이, 곡옥과 관옥을 은줄로 연결한 목걸이, 은제팔찌, 은제허리띠의 순으로 놓여 있었다. 주위에서는 철제가위가 1점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상황으로 보아 남쪽의 피장자는 남성, 북쪽은 여성인 것 같다. 그리고 여성 피장자 관대의 30㎝ 정도 하부에서 자갈돌층이 확인되었으며, 여기서 등자 1점과 금동제운주 3점이 출토되었다. 이 등자와 짝을 이루는 다른 1점이 부장품구역에서 출토된 점에서 남성 피장자가 먼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 관대는 북반부 쪽이 남반부 쪽보다 1단 낮은 1인용으로 축조되어 북반부 일대에도 남반부 피장자의 부장품을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중에 북반부 피장자를 합장하기 위해 북반부 일대의 유물을 부장품구역으로 옮길 때, 미처 다 옮기지 못하고 등자와 운주의 일부를 남긴 채 북반부를 남반부와 같은 높이로 보수한 것으로 보인다.
관대에서 서벽까지의 공간에는 머리를 남쪽으로 둔 3구의 인골이 검출되었다. 동쪽 인골에는 철제도자(鐵製刀子), 가운데 인골에서는 금동제귀걸이·목걸이·사행상철기(蛇行狀鐵器), 서쪽 인골에서는 유리제목걸이가 출토되었다. 이들의 부장품은 아주 빈약한 편이어서 관대 위에 있는 피장자들의 노예와 같은 신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입구인 서벽은 정연하게 3단 정도 쌓은 뒤, 그 위는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데 주위에 대한 조사가 불충분해 연도(羨道)의 존재여부는 불명확하다.
토기류에는 고배가 주류를 이루며 그 밖에 장경호·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고배는 대각의 투창이 상하로 엇갈려 뚫린 것으로 경주지역 출토품과 비슷하다.
마구류에는 안장·재갈·등자·마탁·행엽·운주·사행상철기가 출토되었으며, 경주지역과 유사성을 가지나 경주지역에 비해 재질이 한 등급 정도 낮다.
무기류로는 대도·창·도자·활·화살촉·화살통이 출토되었으며 이 역시 경주지역 출토품과 유사하다. 장신구로는 출자형관식·귀걸이·목걸이·허리띠·반지·신발이 출토되었는데 경주지역과 유사성을 가지나, 경주지역에 비해 재질이 한 등급 정도 낮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고분의 출토품은 경주지역과 많은 유사성을 가지면서 경주지역 고총 출토품보다 한 등급이 낮은 유물상을 보이고 있다.
축조연대를 추측할 수 있는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비교적 편년이 확립된 경주지역과 비교해보면, 경주지역에서 출자형 관식이 5세기 후반부터 출토되고 있는 점, 고배 대각의 말단부가 약간 들리게 처리된 점, 장경호의 어깨가 강조되었거나 약간 아래로 처진 것이 보이는 점 등에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고분은 유물에 있어서 경주와 유사성을 가지나 묘제에 있어서는 고유의 전통을 띠고 있어 피장자는 신라정권에 흡수된 지방호족일 가능성이 높다. → 양산북정리고분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