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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33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덕천 성기운(德泉 成璣運. 1877∼1956) 선생의 현판 大字墨書 경암재(景巖齋), 치재(恥齋) 등 2건 5매, 記文, 上梁文, 元韻, 기타 등 全13枚 일괄
경매번호  133-092 시작가  60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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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한말 대유학자이며 항일투사인 덕천 성기운(德泉 成璣運. 1877∼1956) 선생의 현판 大字墨書 경암재(景巖齋), 치재(恥齋) 등 2건 5매, 記文, 上梁文, 元韻, 기타 등 全13枚 일괄로 상태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크기> 75×29.5cm 등

<참고> 성기운(成璣運). 1877∼1956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유학자 항일의사.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순재(舜在), 호가 덕천(悳泉). 아버지는 성두채(成斗彩)이다. 대제학 회곡(檜谷) 성석용(成石瑢)의 16세손이며, 동주(東洲) 성재원(成悌元)의 후손이다. 1877년(고종 14) 11월 13일 청도군 이서면 신안동(新安洞)[현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新村里)]에서 출생하였다. 12세에 만구와(晩求窩) 이종기(李種杞)의 문인 회산 반동락(潘東雒)의 문하에서 공부하다가 임재 서찬규(徐贊奎)·간재 전우·연재 송병선(宋炳璿)·심석재 송병순(宋炳珣)·난곡 최영준(崔泳俊)·면암 최익현(崔益鉉)·지산 김복한(金福漢) 등을 찾아보고, 24세 되던 1900년 간재의 문하에 들어갔다. 성기운은 32세에 청도군 덕천으로 이사하였다가, 34세 되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나라를 잃은 슬픔에 통곡하고, 1912년 스승 간재를 따라 부안 계화도(繼華島)로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성기운은 일제 침략의 위기적 상황을 맞이하여 강상 의리(綱常義理)를 세우고 존양 대의(尊攘大義)를 주장함으로써 선비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그는 ‘인간은 학문이 아니면 인간이 될 수 없다’고 하여, 학문은 곧 인간이 인간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학문이란 도(道)를 배우는 것이며, 이 도는 일상 생활에 있어서 지켜야 할 윤리라 하여 실천성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성기운은 스승 간재가 현실 문제에 소극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리(義理)를 실천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성기운은 41세 되던 1917년 5월 24일 호적령(戶籍令)에 반대하여 호적을 거부하였다. 그는 1917년 5월부터 8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구속되었다가 석방되는 일을 거듭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의 고문을 받았으나 단식으로 대응하며 일제의 호적에 등재되기를 거부하였다. 뿐만 아니라 춘추 대의(春秋大義)에 입각하여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거부하며 대한 유민(大韓遺民)을 자처함으로써 절의(節義)를 지키는 진정한 선비의 기개를 보여주었다. 성기운의 문인 손영석(孫永錫)의 『노옥 일기(虜獄日記)』에 의하면, 1917년 5월 20일에 청도 경찰에서 부장과 여러 명의 순사들이 들이닥쳐 선생을 연행하려 하자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내가 대한국민인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하니, 왜경이 말하기를 “무슨 이유로 호적을 하지 않느냐?”고 하였다. 이에 성기운이 말하기를 “나는 한국 유민인데 왜 너희들 왜적의 호적을 해야 하느냐, 더구나 나는 우리 한국 땅에 살고 있는데 너희들의 호적에 들어가야 하느냐?”고 하니 일본 경찰도 감동하여 진의사(眞義士)로 평가하였다 한다. 1922년 7월 스승 간재 전우의 타계 소식을 듣고 청도군 신안동 덕천재(悳泉齋)에서 간재의 문집을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24년 성기운은 청주(淸州) 문의(文義) 의성동(義成洞)으로 이사하였고, 1928년에는 공주(公州) 달전(達田)으로 이사하여 정착한 뒤 독서와 저술에 전념하였으며, 1953년에는 충현 서원(忠賢書院) 원장을 역임하였다. 1956년 8월 5일 달전 정사(達田精舍)에서 사망하였다. 1986년 『덕천 선생 문집(悳泉先生文集)』이 덕천 선생 기념 사업회에서 영인으로 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덕천집(悳泉集)』과 『덕천속집(悳泉續集)』, 그리고 『덕천 선생 연보(悳泉先生年譜)』·『덕천 습유(悳泉拾遺)』 등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