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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37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홍직필(洪直弼) 선생의 辛亥(1851)年 간찰
경매번호  137-055 시작가  30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약시 예약응찰금액의 20%를 경매 1일전까지 예치하셔야 예약응찰을 하실수 있습니다.

- 입금 계좌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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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홍직필(洪直弼) 선생의 辛亥(1851)年 간찰로 퇴변색이 있으나 본문 상태 양호하다.
<크기> 43×30.6cm

<참고> 홍직필(洪直弼), 1776년(영조 52)∼1852년(철종 3).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남양(南陽[1]). 초명은 홍긍필(洪兢弼). 자는 백응(伯應)‧백림(伯臨), 호는 매산(梅山). 서울 출신. 판서 홍이간(洪履簡)의 아들이다. 뛰어난 재질이 있어 7세 때 한자로 문장을 지었으며, 17세에는 이학(理學)에 밝아 성리학자 박윤원(朴胤源)으로부터 오도유탁(吾道有托)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801년(순조 1) 부모의 권유로 사마시에 응시하여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회시에서 실패하고, 이로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당시의 원로 명사인 송환기(宋煥箕)‧이직보(李直輔)‧임로(任魯) 등과 연령을 초월하여 교유하였다. 특히, 오희상(吳熙常)과 가장 오래 교유하였는데, 그로부터 유종(儒宗)이라 호칭되었으며, 이봉수(李鳳秀)로부터 학문이 가장 뛰어나다는 칭찬을 받았다. 1810년 돈령부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1814년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로 제배되었다. 이때 동궁(東宮: 뒤의 翼宗)이 새로 세자에 올라 당시의 유명한 사람들을 뽑아 매일 서연(書筵)을 여는 데 그도 발탁되었다. 1822년 장흥고봉사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838년(헌종 4) 이조에 재학(才學)으로 천거되어 다음해 장악원주부‧황해도도사에 임명되고, 1840년 군자감정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이듬해 경연관(經筵官)에 천거되고, 이어 지평을 거쳐 집의에 이르렀다. 1844년 특별히 당상관으로 공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소를 올려 사양하고, 다시 동부승지에 제배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듬해 성균관좨주를 비롯하여 1851년(철종 2) 대사헌에 전후 두 차례나 특배되고, 이듬해 지돈령부사에 승배되었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다. 그해 7월 형조판서에 제수된 뒤 곧 죽었다. 그의 학문은 궁리(窮理)를 근본으로 하고 육경(六經)은 물론 제자백가에 통달하였으며, 천지음양귀신(天地陰陽鬼神)의 묘와 역대흥망치란(歷代興亡治亂)의 자취와 산천풍토인물족계(山川風土人物族系)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하였다. 성리학에서 정자(程子)의 심본설(心本說)을 극력 지지하고 한원진(韓元震)의 심선악설(心善惡說)을 반대하고, 또한 임성주(任聖周)의 “성선(性善)은 곧 기질(氣質)이다.”고 한 데에도 반대하였다. 따라서, 주리파(主理派)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개천의 경현사(景賢祠)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매산집》 52권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