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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37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중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과천 四忠書院, 거제 盤谷書院에 제향된 몽와 김창집(夢窩 金昌集) 선생의 간찰
경매번호  137-110 시작가  10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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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중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과천 四忠書院, 거제 盤谷書院에 제향된 몽와 김창집(夢窩 金昌集. 1648∼1722) 선생의 간찰로 퇴변색, 얼룩이 있고 배접이 되어 있으며 본문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크기> 22×23.5cm
<참고> 김창집(金昌集). 1648(인조 26)∼1722(경종 2)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여성(汝成), 호는 몽와(夢窩). 좌의정 상헌(尙憲)의 증손이며 영의정 수항(壽恒)의 아들, 창협(昌協)·창흡(昌翕)의 형이다. 1672년(현종 13)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1675년 아버지 수항이 화를 입고 귀양가 있었으므로 과거응시를 미루었다. 1681년(숙종 7) 내시교관을 제수받았고, 1684년 공조좌랑으로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언·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 때 아버지가 진도의 유배지에서 사사되자, 귀향하여 장례를 치르고 영평(永平)의 산중에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정국이 바뀌어 복관되고, 병조참의를 제수받았으나 사임하였다. 다시 동부승지·참의·대사간에 임명되었지만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그뒤 철원부사를 제수받았는데, 이때 큰 기근이 들고 도둑이 들끓어 민정이 소란하자 관군을 이끌고 토평하였다. 강화유수·예조참판·개성유수 등을 역임하고, 호조·이조·형조의 판서를 지냈다. 1705년 지돈녕부사를 거쳐 이듬해 한성부판윤·우의정, 이어서 좌의정에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1712년에는 사은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 1717년 영의정에 올랐다. 노론으로서 숙종 말년 세자의 대리청정을 주장하다가 소론의 탄핵을 받았고, 숙종이 죽은 뒤 영의정으로 원상(院相)이 되어 서정(庶政)을 맡았다. 경종이 즉위하여 34세가 되도록 병약하고 자녀가 없자, 후계자 선정문제로 노론·소론이 대립하였다. 이때 영중추부사 이이명(李頤命), 판중추부사 조태채(趙泰采), 좌의정 이건명(李健命) 등과 함께 노론 4대신은 연잉군(延祁君: 영조)을 왕세자로 세우기로 상의하여, 김대비(金大妃:숙종의 계비)의 후원을 얻었다. 이에 경종의 비 어씨와 아버지 어유구(魚有龜), 사직 유봉휘(柳鳳輝) 등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으나 결국 실행하게 되었다. 1721년(경종 1) 다시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상소하여, 처음에 경종은 대소 정사를 세제에게 맡길 것을 허락하였으나 소론의 격렬한 반대로 실패하였다. 수개월 뒤 소론의 극렬한 탄핵으로 노론이 축출되고 소론 일색의 정국이 되었다. 곧 이어 소론의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 등이 노론의 반역도모를 무고하여 신임사화가 일어나자, 거제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이듬해 성주에서 사사되었다. 1724년에 영조 즉위 후 관작이 복구되었으며, 영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영조 때 과천에 사충서원(四忠書院)을 세워 이이명·조태채·이건명과 함께 배향하였으며, 거제의 반곡서원(盤谷書院)에도 제향되었다. 저술로는 《국조자경편 國朝自警編》·《몽와집》 등이 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