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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37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조선 후기의 척신(戚臣)으로 예서·행서·초서 등에 능했던 민규호(閔奎鎬) 선생의 甲戌(1874)年 간찰
경매번호  137-132 시작가  10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약시 예약응찰금액의 20%를 경매 1일전까지 예치하셔야 예약응찰을 하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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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조선 후기의 척신(戚臣)으로 예서·행서·초서 등에 능했던 민규호(閔奎鎬) 선생의 甲戌(1874)年 간찰로 상태 양호하다.
<크기> 36.5×23cm
<참고> 민규호(閔奎鎬), 1836~1878
조선시대 척신(戚臣). 본관 여흥(驪興). 자 경원(景園). 호 황사(黃史)·사호(賜號)·지당(芝堂). 시호 충헌(忠獻). 서울 출생. 좌의정 진원(鎭遠)의 9세손으로, 민치오(閔致五)의 아들이다. 1859년(철종 10) 문과에 급제, 1866년(고종 3) 민치록(閔致祿)의 딸이 왕비가 됨에 따라 그 일족으로 중용되어 이조참의가 되고, 1869년 형조참판·이조참판을 지냈다.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이 친정하자 예조판서·이조판서·무위영도총제(武衛營都摠制) 등을 지내며, 척신의 대표격으로 국정을 거의 도맡았다.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에 반대하여 개국론(開國論)을 내세웠다. 1878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7일만에 죽었다. 예서·행서·초서 등 글씨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