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매 성료! 성원과 참여 감사드립니다! 새해 1월 4일 다시 뵙겠습니다!
 
전적류
양장고서
고미술품
근현대미술품
근현대사자료
음악관련자료
기타경매
사랑나눔경매
 
 
HOME > 현장경매 > 제 137 회 > 大正六年(1917) 公州에서 修譜 간행한 [만경노씨족보(萬頃盧氏族譜)] 丁巳譜 木活字本 6권 6冊 완질


[ 제 137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大正六年(1917) 公州에서 修譜 간행한 [만경노씨족보(萬頃盧氏族譜)] 丁巳譜 木活字本 6권 6冊 완질
경매번호  137-297 시작가  15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약시 예약응찰금액의 20%를 경매 1일전까지 예치하셔야 예약응찰을 하실수 있습니다.

- 입금 계좌 안내 -
[국민은행 962701-01-220478 조현제]
[농협 150103-52-008306 조현제]
[대구은행 028-07-011105-3 조현제]
예약하기



<내용> 大正六年(1917) 公州에서 修譜 간행한 [만경노씨족보(萬頃盧氏族譜)] 丁巳譜 木活字本 6권 6冊 완질본으로 권두에 舊譜序와 丁巳(1917)譜 序 跋, 凡例 등이 있고 譜末에 排列圖, 修譜任員錄, 판권지 등이 있다. 표지 부분적인 박피가 있으나 본문 상태 양호한 편이다.
<크기> 23×35cm

<참고> 만경노씨(萬頃盧氏)
만경(萬頃)은 전북 김제군에 속해있던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두내산현을 신라 경덕왕이 만경현으로 고쳤으며, 조선 광해군 때 현을 폐하고 김제에 속하였다. 1913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제군에 속한 만경면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김제시 만경읍으로 승격했다. 만경노씨(萬頃盧氏)의 시조는 노극청(盧克淸)이다. 그는 평양백 노판(盧坂)의 후손으로 극청(克淸)이 고려 명종조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만경군(萬頃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평양노씨(平壤盧氏)에서 분적(分籍), 만경을 관향(貫鄕)으로 삼고 극청(克淸)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만경(萬頃)은 전라북도(全羅北道) 김제군(金提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두내산현(豆乃山縣)을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만경현(萬頃縣)으로 고쳤으며, 고려(高麗) 예종(睿宗)이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뒤에 현(縣)으로 삼았고, 조선(朝鮮) 광해군(光海君) 때 현(縣)을 폐하고 김제(金堤)에 속하였다. 인조(仁祖) 때 다시 현이 되고, 1895년(고종 32)에 와서 군(郡)으로 승격하였다가 1913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제군에 속한 만경면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일세조 극청의 아들 상귀(尙貴)가 고려조에서 판관(判官)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인(璘)은 부사(府使)를 역임하여 동정(同正) 근(謹)과 함께 가맥(家脈)을 이어 왔으며, 7세손 혁(革)은 1401년(태종 1)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을 거쳐 세종(世宗) 때 홍주 목사(洪州牧使)를 지냈다. 한편 중봉(重峯) 조 헌(趙 憲)의 문하(門下)에서 학문(學問)을 연마한 응환(應晥 : 세득의 아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을 따라 의병(義兵)이 되어 아우 응탁(應晫)․응호(應晧)와 함께 여러 전투에서 왜군(倭軍)을 격퇴시키고 금산(錦山) 전투에서 용전(勇戰)하다가 700의사(義士)와 함께 순절하여 향리(鄕里)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그의 아들 숙(숙)은 이 괄(李 适)의 난(亂) 때 공주(公州)로 피난간 인조(仁祖)의 시중을 극진히 하여 난이 평정(平定)된 후 왕이 그의 공적을 치하하여 벼슬을 내리고 공신(功臣)에 책록(策錄)하려 하자 이를 극구 사양하므로 인조(仁祖)는 그의 고향을 <조왕동(助王洞)>이라 부르게 하였다. 그의 아우 (瑋)는 별제(別提)를 지냈고, 응호(應晧)의 아들 찬(璨)은 좌랑(佐郞)을 역임하여 현감(縣監) 삼방(三房), 부사(府使) 이점(以漸), 군수(郡守) 이척(以倜) 등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만경 노씨(萬頃盧氏)는 남한(南韓)에 총 7,43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 공주시 우성면에 집성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