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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37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1969년 汎友社에서 발행한 김광섭(金珖燮)의 네번째 詩集 [성북동비둘기] 단책(112p)
경매번호  137-363 시작가  30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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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9년 汎友社에서 발행한 김광섭(金珖燮)의 네번째 詩集 [성북동비둘기] 단책(112p)으로 상태 양호하다.
<크기> 15.2×19.5cm

<참고>

ⓐ 성북동 비둘기
1969년 범우사에서 간행한 김광섭의 네번째 시집. 시인이 고혈압으로 졸도한 이후 병석에서 쓴 것으로, 노년의 원숙미를 보여주는 대표적 시집이다. 「고향」, 「성북동 비둘기」, 「생의 감각」, 「심부름 가는」, 「겨울날」 등 총 35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으며, 지성과 감성이 잘 융합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인생과 자연, 문명 등 인간이 생활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각종 체험을 중심으로 문명 비판과 자연성 탐구 등을 시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북동 비둘기」는 문명의 발달 속에 보금자리를 빼앗긴 비둘기를 소재로 해서 환경 파괴와 문명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는 한편,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을 동시에 표현한 수작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집은 고독과 노년의 쓸쓸함, 고향에 대한 향수 등 외로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서정이 순진한 만물을 들추어/ 노래를 찾는다/ 꽃이다 새다 이슬에 사는 짐승들이/ 눈물 흘리며/ 강자의 비문에서 시간이 때를 씻는데/ 웬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냐 모이는 아이들/ 서울이란 델 언제 이렇게 나도 왔나부다”(「심부름 가는」)에서 느껴지는 고독감과 절망감이 두드러지는 시집이다.
ⓑ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시인.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이산(怡山). 함경북도 경성 출신. 아버지는 인준(寅濬)이며, 3남3녀 중 장남이다. 1917년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중동학교로 옮겨 1924년에 졸업했다.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같은 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적을 둔 이헌구(李軒求)와 친교를 맺었으며, 이어 정인섭(鄭寅燮)과 알게 되어 해외문학연구회에 가담하였다. 1932년 대학졸업 후 귀국하여 1933년 모교인 중동학교의 영어교사가 되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하여, 1941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3년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문화 및 정치의 표면에서 활동하였다. 중앙문화협회의 창립,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민주일보 사회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민중일보 편집국장,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거쳐,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이후에는 주로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자유문학가협회를 만들어 위원장직을 맡고, ≪자유문학 自由文學≫지를 발행했다. 그가 문학에 뜻을 갖게 된 것은 대학시절 이헌구와 교분을 맺으면서부터인데, 1927년에는 와세다대학의 우리 나라 학생 동창회지인 ≪R≫에 시 〈모기장〉을 발표했다.  1933년 ≪삼천리 三千里≫에 〈현대영길리시단 現代英吉利詩壇〉을 번역, 발표했고, 같은 해 시 〈개 있는 풍경〉을 ≪신동아≫에, 평론 〈문단 빈곤과 문인의 생활〉을 ≪동아일보≫(1933.10.2.)에 발표했다.  이어서 1934년 ≪문학 文學≫에 〈수필문학고 隨筆文學考〉, ≪조선문학 朝鮮文學≫에 〈현대영문학에의 조선적 관심(朝鮮的關心)〉을 발표하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했다.  본격적으로 시작(詩作)에 들어선 것은 1935년 ≪시원 詩苑≫에 〈고독 孤獨〉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 시는 일본에 의해 주권을 상실한 좌절과 절망을 읊은 것이었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동경 憧憬〉·〈초추 初秋〉 등이 있는데, 만주사변을 배경으로 한 고독·불안·허무의식이 배경이 된 것들이었다. 1937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 연극운동에 가담하면서 서항석(徐恒錫)·함대훈(咸大勳)·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 등과 교유했다.  1938년 제1시집 ≪동경 憧憬≫을 간행했다. 광복 후에는 민족주의 문학을 건설하기 위해 창작과 단체활동을 병행했다. 이 무렵의 시로는 〈속박과 해방〉·〈민족의 제전〉 등이 있는데, 광복의 환희와 민족의식을 표현한 것이었다. 한편, 계도적인 민족주의 문학론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경향신문≫에 〈정치의식과 문학의 기본이념〉(1946), ≪민주일보≫에 〈문학의 당면 임무〉(1946), ≪만세보 萬歲報≫에 〈민족문학의 방향〉(1947), ≪백민 白民≫에 〈민족문학을 위하여〉(1948)·〈민족주의 정신과 문학인의 건국운동〉(1949) 등을 발표했다.  이러한 일련의 시론(時論)들은 그의 시정신과 동일한 맥락을 이루는 것이었다. 1949년에 간행된 제2시집 ≪마음≫과 1957년에 간행된 제3시집 ≪해바라기≫의 시는 민족의식과 조국애가 더욱 확대되고 심화된 시편들이었다.  작품 〈마음〉은 맑은 물과 백조의 조응을 통하여 한 생명의 실상을 읊은 것이고, 〈해바라기〉는 높은 이념을 해로써 상징하고 민족의 지표를 제시한 것이었다.  후기의 작품들은 1966년에 간행된 시집 ≪성북동 비둘기≫와 1971년 간행된 ≪반응 反應≫에 수록되었는데 전자에서는 병상에서 터득한 인생·자연·문명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1960년대의 시대적 비리도 비판하였고, 후자는 사회성을 띤 시들로서 1970년대 산업사회의 모순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 때의 시편들은 관념이 예술적으로 세련, 승화되어 관조와 각성의 원숙경을 보여준다. 그는 민족적 지조를 고수한 시인이며, 초기의 작품은 관념적이고 지적이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인간성과 문명의 괴리현상을 서정적으로 심화시킨 시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57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70년 문화공보부예술상, 같은 해 국민훈장모란장, 1974년에는 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이 밖에 저서로는 ≪김광섭시전집≫(1974)과 번역시 ≪서정시집 抒情詩集≫(195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