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매 성료! 성원과 참여 감사합니다! 12월 7일 더 좋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전적류
양장고서
고미술품
근현대미술품
근현대사자료
음악관련자료
기타경매
사랑나눔경매
 
 
HOME > 현장경매 > 제 137 회 > 종교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뒤에 친일파로 변절한 고우 최린(古友 崔麟)의 漢詩 墨書


[ 제 137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종교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뒤에 친일파로 변절한 고우 최린(古友 崔麟)의 漢詩 墨書
경매번호  137-439 시작가  50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약시 예약응찰금액의 20%를 경매 1일전까지 예치하셔야 예약응찰을 하실수 있습니다.

- 입금 계좌 안내 -
[국민은행 962701-01-220478 조현제]
[농협 150103-52-008306 조현제]
[대구은행 028-07-011105-3 조현제]
예약하기



<내용> 종교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뒤에 친일파로 변절한 고우 최린(古友 崔麟)의 墨書로 표구했던 것을 분리한 것으로 표구 배접이 그대로 있으며 퇴변색, 얼룩, 부분 갈라짐, 垈紙 부분 박피 등이 있으나 본문 상태 대체로 양호하다.
<크기> 33.5×134cm
<참고> 최린(崔麟. 1878(고종 15)∼1958)
종교인. 3·1독립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뒤에 변절하였다. 호는 고우(古友), 도호(道號)는 여암(如庵). 함경남도 함흥 출신.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덕언(德彦)의 아들이다. 도필두(都必斗)에게서 한학(漢學)을 배우고, 18세에 상경하여 각지를 유람하였다. 불교에 귀의하려고 금강산 장안사에 들어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1895년(고종 32) 함경남도관찰부 집사가 되었다. 190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한국인들이 조직한 일심회(一心會)에 가입, 정부 개혁을 추진하다 발각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잠시 피신하였다가 귀국, 외부주사(外部主事)가 되었다. 1904년 한국 황실특파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동경부립 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에 입학했는데, 이 때 일본유학생회를 조직하여 회장이 되었다. 1906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에 입학, 1909년에 졸업하고 이듬해 귀국하였다. 33세 때 손병희(孫秉熙)의 권유로 천도교(天道敎)에 입교하고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 교장에 취임하였다. 한편, 안창호(安昌浩)의 발의로 조직된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배일구국운동에 투신하였다. 1918년 1월 미국 대통령 윌슨(Wilson, T.W.)은 전후 처리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 중 식민지 문제는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하며 폴란드 민족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제창하였다. 또한 1919년 1월중에 프랑스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리는 등 세계의 정세가 점차 약소국에 유리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인 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과 협의, 파리강화회의가 열리는 것을 기회로 조선민족도 궐기하여 독립의 열망이 충만함을 보여 주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3·1독립만세운동에 관한 세부적 계획이 추진되기 시작하는데, 이 때 그 계획의 실행을 맡아 보았다. 이 해 2월 중앙학교(中央學校) 교장 송진우(宋鎭禹), 교사 현상윤(玄相允) 및 최남선(崔南善) 등을 만나 독립만세운동에 관한 계획을 설명하고 찬동을 얻어냈다. 이들은 다시 만나 당시의 이름 있는 인사들 및 기독교도 등을 설득해 이 운동 계획에 참여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에 관한 교섭은 결국 보람없이 끝났으나, 신흥사(新興寺)의 한용운(韓龍雲)에게 그 계획을 설명하여 찬동을 얻어내었다. 또한 독립만세운동의 일원화 방침을 역설, 마침내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을 성취시켰다. 최남선에게 독립선언서의 골자 및 방략을 제시하여 초안을 작성하도록 하였으며, 작성된 초안을 각 대표들에게 회람, 동의를 얻은 뒤 날인을 받아 활자판으로 만들어, 잠시 집에 감추어 두었다가 보성사(普成社)에 보내 인쇄하였다. 3월 1일 손병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 중 28인과 함께 태화관(泰華館)에 모여 대한독립을 선언한 뒤, 일본 경찰에 붙잡혀 출판법 및 위반 보안법, 치안방해 등의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천도교 교세 확장에 힘써 도령(道領)·대도정(大道正)·장로(長老) 등을 지냈고, 1927년 구미 30여 개 국을 유람하였다. 그러나 그 뒤 변절하여 1934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가 되고, 1937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1939년 임전보국단(臨戰報國團) 단장에 취임하는 등 광복 때까지 친일 활동으로 일관하였다. 1950년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