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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38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조선 전기 남원 출신 문신 윤효손(尹孝孫)의 실기 [추계선생실기(楸溪先生實記)] 5卷 2冊 완질, [추계선생유집(楸溪先生遺集)] 5卷 2冊 등 4책
경매번호  138-290 시작가  12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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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조선 전기 남원 출신 문신 윤효손(尹孝孫. 1431-1503) 선생의 1849년 간행 [추계선생실기(楸溪先生實記)] 木活字本 5卷 2冊, [추계선생유집(楸溪先生遺集)] 石版本 5卷 2冊 등 완질본 2종 4冊 일괄로 [추계선생실기(楸溪先生實記)] 木活字本 권두에 崇禎紀元後四丁未(1847)...唐城洪直弼序, 洪敬謨謹序, 李苦愚謹跋. 丁未...李景在謹識, 歲己酉(1849)...幸州奇正鎭修正謹跋, 권말에 歲在丁未(1847)仲春上澣後孫[尹]洛鉉書, 崇禎紀元後四己酉(1849)宗孫[尹]泰奭謹識가 있고, [추계선생유집(楸溪先生遺集)] 권두에 唐城洪直弼序, 經筵事弘文館提學同知成均館事洪敬謨謹序, 권말에 禮曹判書兼藝文官提學李若愚謹識, 丁未(1847)孟夏資憲大夫工曹判書韓山李景在謹識, 歲己酉(1849)孟春日幸州奇正鎭謹跋, 歲丁未(1847)仲春上澣後孫洛鉉謹書, 己酉(1849)十四代嗣孫泰奭謹識와 歲在辛卯(1951)季春後孫滸燮謹識, 辛卯(1951)...後孫[尹]在甲謹識의 重刊跋이 있다. 두 가지 모두 상태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크기> 22.7×34.7cm 등

<참고> 윤효손(尹孝孫. 1431 ~ 1503)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유경(有慶), 호는 추계(楸溪). 윤언재(尹彦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사감무(長沙監務) 윤희(尹希)이다. 아버지는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 윤처관(尹處寬)이며, 어머니는 감찰 정존(鄭存)의 딸이다. 관찰사 윤지형(尹止衡)의 아버지이다. 1453년(단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권지승문원부정자에 보임되고, 1455년(세조 1) 성균관저작이 되어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57년 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우헌납과 예조정랑을 거쳐 의정부사인이 되었는데, 어버이 병 때문에 사직하자 장흥부사로 임명되었다. 1469년(예종 1) 훈련원부정 당시 시정의 폐단을 간하다가 도리어 옥에 갇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1472년(성종 3)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로 옮겼고 좌리원종공신(佐理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그 때 『경국대전』·『오례의주(五禮儀註)』를 수찬했으며, 전사고(典祀庫) 설치에 주동이 되기도 하였다. 1473년 호조참의·예조참의를 역임하고, 전주부윤에 제수되어 고원등제(庫員等第)의 실시를 건의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포상을 청하자, 성종은 감탄해 당(唐)나라 옷감을 하사하였다. 1476년 공조참의로 승진되고, 이듬해 형조참판으로 옮겨졌다가 곧 경상도관찰사로 전직되었다. 1478년 한성좌윤·한성우윤을 거쳐 경상도감사를 역임하고 대사헌이 되었다. 그러나 감사로 있을 때 부정사건으로 한 자급(資級) 강등되어 동지중추부사로 좌천되었다. 1486년 나주목사를 거쳐, 3년 후에 동지중추부사에 세자우빈객(世子右賓客)을 겸하였다. 1490년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활민대략』·『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등의 책과 조맹부(趙孟頫)의 족자(簇子) 1첩을 가지고 왔다. 또, 문묘의 찬탁(饌卓)을 창설하고, 세자의 관(冠)과 도포의 제도를 정하였다. 그 뒤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했으며, 1493년 형조판서를 거쳐 우참찬에 임명되었다. 1494년 빈전도감제조(殯殿都監提調)와 수찬(修撰)에 참여하였다. 1498년(연산군 4)김일손(金馹孫)의 사초(史草)를 봤다는 이유로 파면되었다가 이듬해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1500년 도총부도총관, 이듬해 좌참찬을 거쳐 뒤에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다. 남원의 방산서원(方山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