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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40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정조 당시 초간 기까운 시기에 인출한 노계 박인로(蘆溪 朴仁老) 선생의 문집 [노계선생문집(蘆溪先生文集)] 3卷 2冊 中 앞 책 한 책(卷1-2)
경매번호  140-404 시작가  12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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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선구자 노계 박인로 선생의 [노계선생문집(蘆溪先生文集)] 木板本 3卷 2冊 中 앞 책 한 책(卷1-2)으로 正宗 庚申刊 초간 가까운 시기의 선명한 인출본이며, 앞쪽에 修撰官知製奉敎 金裕憲의 말미에 '烏川 鄭夏源의 謹書, 月城 崔옥 謹跋' 跋이 있다. 앞표지 부분 박락, 뒷표지 탈락, 부분적 얼룩 외 기타 보존 상태 양호하다.
<크기> 20.5×32.5m
<참고> 박인로(朴仁老. 1561(명종 16) ~1642(인조 20))
조선 중기 문인. 본관은 밀양.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무하옹(無何翁). 9편의 가사와 70여 수의 시조를 남겼으며, 정철·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으로 불린다. 아버지 석(碩)은 승의부위(承議副尉)를 지냈고 어머니는 참봉 주순신(朱舜臣)의 딸이었다. 박인로의 일생 중 전반기에 대한 기록은 소략해 학문의 연마 정도와 교우관계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비록 미비한 향반의 후예일지라도 "이 세상에 남길 만한 이름은 효도·우애·청백이며 가슴속에 간직한 것은 충과 효 두 글자"라 하면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이상을 실현하는 전형적 사대부의 삶을 추구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3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좌절도사 성윤문(成允文)의 막하에 들어가 그의 명으로 〈태평사 太平詞〉를 지었는데, 긴 전쟁이 끝난 뒤의 상황을 "들판에 쌓인 뼈는 산보다 높고 큰 도읍, 큰 고을이 여우굴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또 자신의 시대를 여전히 임금의 덕화(德化)가 두루 미치는 태평성대로 인식하고 전쟁 동안 소홀히 했던 오륜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39세 때 문과에 급제해 조라포만호(助羅浦萬戶)로 부임, 41세 때 이덕형을 향리에서 만나 〈조홍시가 早紅枾歌〉를 지었다. 45세 때 부산의 통주사(統舟師)로 부임해 〈선상탄 船上嘆〉을 지어 무인다운 기개와 자부심을 표현했다. 51세 때 용진강 사제에 은거해 있던 이덕형을 찾아가 그의 뜻을 대신해 〈사제곡 莎堤曲〉을 지었으며, 〈누항사 陋巷詞〉에서는 향촌에 묻혀 사는 자신의 궁핍한 생활을 노래해 안빈낙도하고자 하는 뜻을 밝혔다. 〈사제곡〉은 박인로가 갈망하던 사대부적 삶의 전형을 보여주며, "어리석고 못나기는 나보다 더한 사람이 없다"는 자조적 고백으로 시작되는 〈누항사〉는 곤궁한 현실과 그 개선의 가능성마저 무산되고 마는 갈등의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53세부터는 유가와 주자학에 몰입했다. 1630년(인조 8) 노인직(老人職)으로 용양위부호군(龍僞副護軍)을받았다. 75세 때는 영남의 안절사 이근원의 덕치를 찬미하는 〈영남가 嶺南歌〉를 지었다. 76세 때에는 노계에 안거할 택지를 마련하고 〈노계가 蘆溪歌〉를 지었다. 그의 생애 전반부는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에서 두드러지며, 후반부에는 향리에서 유가서를 읽으며 안빈낙도를 실천했다. 3권 2책의 〈노계선생문집〉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