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덕분에 현장경매 잘 마쳤습니다. 성원과 참여 감사합니다!
 
전적류
양장고서
고미술품
근현대미술품
근현대사자료
음악관련자료
기타경매
사랑나눔경매
 
 
HOME > 현장경매 > 제 142 회 > 조선 후기의 문신 성재 허전(性齋 許傳), 민치완(閔致完, 1838~1910). 한장석(韓章錫, 1832∼1894), 박종길(朴宗吉, 1783~1852), 한광수(韓光洙, 1858∼?) 선생등 5인의 간찰 5점 일괄


[ 제 142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성재 허전(性齋 許傳), 민치완(閔致完, 1838~1910). 한장석(韓章錫, 1832∼1894), 박종길(朴宗吉, 1783~1852), 한광수(韓光洙, 1858∼?) 선생등 5인의 간찰 5점 일괄
경매번호  142-082 시작가  50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약시 예약응찰금액의 20%를 경매 1일전까지 예치하셔야 예약응찰을 하실수 있습니다.

- 입금 계좌 안내 -
[국민은행 962701-01-220478 조현제]
[농협 150103-52-008306 조현제]
[대구은행 028-07-011105-3 조현제]
예약하기



<내용> 조선 후기의 문신 허전(許傳, 1797∼1886)丙寅(1866)年 간찰, 민치완(閔致完, 1838~1910)의 丁丑(1877)年 간찰. 한장석(韓章錫, 1832∼1894)의 壬辰(1892)年 간찰, 박종길(朴宗吉, 1783~1852)의 庚戌(1850)年 간찰, 한광수(韓光洙, 1858∼?)의 癸未(1883)年 간찰 등 5인의 간찰 5점 일괄로 모두 피봉이 있으며 퇴변색 얼룩이 있으나 본문 상태는 모두 양호하다.
<크기> 43×26cm 등

<참고>

ⓐ 허전(許傳), 1797(정조 21)∼1886(고종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이로(以老), 호는 성재(性齋). 포천 출생. 허병(許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윤(許玧)이고, 아버지는 허형(許珩)이며, 어머니는 이중필(李重泌)의 딸이다. 1835년(헌종 1) 39세의 나이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40년 기린도찰방(麒麟道察訪), 1844년 전적(典籍)·지평(持平)을 거쳐 1847년 함평현감이 되었다. 1850년(철종 1) 교리·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춘추관기사관 등을 역임하면서 경연에 참가해 국왕에게 유교경전을 해설하였다. 1855년 당상관에 오르면서 벼슬이 우부승지와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1862년 진주 민란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들끓자, 그 해소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1864년(고종 1) 김해부사로 부임해 향음주례를 행하고 향약을 강론하는 한편, 선비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쳤다. 그 뒤 가선대부(嘉善大夫)를 거쳐, 1876년 정헌대부(正憲大夫), 1886년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었다. 이익(李瀷)·안정복(安鼎福)·황덕길을 이은 기호(畿湖)의 남인학자로서 당대 유림의 종장(宗匠)이 되어, 영남 퇴계학파를 계승한 유치명(柳致明)과 쌍벽을 이루었다. 그는 경의(經義)와 관련해 항상 실심(實心)·실정(實政)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바탕한 구체적인 개혁안도 제시하였다. 저서로는 『성재집』·『종요록(宗堯錄)』·『철명편(哲命編)』을 비롯해, 선비의 생활의식을 집대성한 『사의(士儀)』 등이 있다.

민치완(閔致完), 1838년(헌종 4)∼1911년.
조선 말기 유학자. 자는 군현(君賢)이고, 호는 지강(芝岡)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경상남도 산청(山淸) 출신이다. 증조부는 민일(閔鎰)이고 조부는 민이주(閔以珠)이다. 부친은 장사랑(將仕郞), 민재규(閔在圭)이며, 어머니 남원양씨(南原梁氏)는 양천민(梁天民)의 딸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학행(學行)으로 효문전참봉(孝文殿參奉)에 임명되었고, 그 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의주부관찰사(義州府觀察使) 등을 지냈다. 만년에는 지강정사(芝岡亭舍)를 짓고 후진 교육에 힘썼다. 1887년(고종 24) 4월 13일 『고종실록(高宗實錄)』의 기사에는 그의 성품이 흉악하고 교활하므로 외딴 섬에 유배시킨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는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민치완은 우연한 계기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 만나게 되었는데, 정세가 바뀔 것을 고려하여 큰 시비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이로 인하여 1874년(고종 11)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잃고 그 문객들이 모두 화를 당할 때도 민치완은 당분간 화를 면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흥선대원군에 대한 분노를 풀지 못하던 민비에 의하여 결국 유배되었다고 적혀 있다. 저서로 시문집인 『지강문집(芝岡文集)』이 있다.

ⓒ 한장석(韓章錫), 1832(순조 32)∼1894(고종 31).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치수(穉綏)·치유(穉由), 호는 미산(眉山)·경향(經香). 한필교(韓弼敎)의 아들이다. 1872년(고종 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73년홍정후(洪正厚)와 같이 홍문관의 부수찬이 되고 교리와 부응교를 거쳐 1881년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1882년 이조참의를 거쳐 1883년 1월에는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을 개편하여 만든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에 임명되어 호무(戶務)에 종사하였다. 같은 해 5월 통리군국사무아문에서 전선사(典膳司)를 관장하며 별시회시시관(別試會試試官)을 역임하였으며, 11월 예문관제학을 거쳐 이듬해 3월에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886년 2월 홍문관제학, 같은 해 3월 예조판서, 1888년 형조판서, 1889년 이조판서, 같은 해 12월에 다시 예조판서, 이듬 해 3월 함경도관찰사, 1891년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유신환(兪莘煥)의 문하인 가운데 김윤식(金允植)·민태호(閔台鎬)와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미산집』이 있다. 시호는 효문(孝文)이었으나, 1910년 문간(文簡)으로 개시(改諡)되었다.

ⓓ 박종길(朴宗吉), 1783( 正祖 7年)~1852(哲宗 3年)
朝鮮 後期의 文臣으로, 本貫은 潘南. 字는 穆如이다. 判中樞府事를 歷任한 文節公 西溪 朴世堂의 後孫으로, 高祖는 司憲府 持平을 歷任한 白石 朴泰維이며, 曾祖는 金山郡守를 歷任한 朴弼基이며, 할아버지는 通德郞을 歷任하였고, 吏曹參議에 贈職된 朴師心이며, 아버지는 通訓大夫 金山郡守를 歷任하였고 嘉善大夫 吏曹參判에 贈職된 朴獻源이며, 어머니는 東萊鄭氏와 竹山安氏와 淸州韓氏이며, 夫人 初配는 延安李氏이며, 繼配는 慶州李氏이다. 官職은 嘉義大夫 工曹參判 兼 同知經筵 義禁府春秋館事 五衛都摠府 副摠管과 江原道觀察使 兵馬水軍節度使를 歷任하였고, 1874年(高宗 11年)에 孝行으로 旌閭를 받았다. 朴宗吉의 墓域은 京畿道 議政府市 長巖洞 山 146-1番地(略圖參照)에 位置해 있다. 墓所는 서울特別市 道峰區 道峰洞에 位置해 있었으나 1961年 이곳으로 移葬하였다. 墓所에는 延安李氏, 慶州李氏 等 3位 單墳 合葬墓로 造成되어 있다. 封墳 옆 右側에는 中央에 無窮花 紋樣이 陽刻된 白色의 臺石위에 烏石의 碑身을 세우고 螭首를 갖춘 墓碑가 建立되어 있다. 1995年 10月에 建立된 墓碑 前面에는 『嘉義大夫工曹參判朴公宗吉之墓 配貞夫人延安李氏祔左 配貞夫人慶州李氏祔右』라 記錄되어 있고, 後面에 碑陰記는 6代 宗孫 贊鎬가 謹識하였고, 族孫 勝圭가 謹竪하였다. 封墳 앞에는 魂遊石, 床石, 鼓石, 香爐石 等이 配置되어 있다.

한광수(韓光洙_), 1858(철종 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온(景蘊). 서울 출신. 한장석(韓章錫)의 아들이다. 1876년(고종 13) 진사가 되었고, 1880년 증광문과에 급제, 승정원가주서로 발탁되었다. 그뒤 승정원부제학·시강원설서·홍문관정학·예문관검열·병조정랑 등을 거쳐, 1890년 형조참의·성균관대사성·승정원동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892년 이후 이조참의·중추원일등의관·궁내부특진관·영희전제조(永禧殿提調) 등을 지냈다. 이에 앞서 시조(始祖)의 봉분문제(封墳問題)로 상소한 글이 실록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