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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43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조선 말기의 문신 장석신(張錫藎), 조선 말기의 무신·학자 하겸락(河兼洛), 애국지사 하용제(河龍濟), 유학자 하종락(河鐘洛) 선생 등 4인의 유묵 4점 일괄
경매번호  143-015 시작가  10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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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조선 말기의 문신 장석신(張錫藎), 조선 말기의 무신·학자 하겸락(河兼洛), 애국지사 하용제(河龍濟), 유학자 하종락(河鐘洛) 선생 등 4인의 유묵 4점 일괄로 상태 양호하다.
<크기> 47×23.5cm 등
<참고>

ⓐ 장석신(張錫藎), 1841(헌종 7)∼1923.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일명 동한(東翰). 자는 순명(舜鳴), 호는 과재(果齋) 또는 일범(一帆). 아버지는 참판 장시표(張時杓)이며, 어머니는 정완(鄭垸)의 딸이다. 족대부(族大父)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82년(고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893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수찬·사헌부정언 등을 거쳐 1898년 통정대부에 오르고, 1900년 비서원승(祕書院丞)이 되었다. 1901년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9조의 소(疏)를 올렸는데 모두 시사(時事)의 급무(急務)였다. 1905년 이완용(李完用) 등 을사오적이 왜병을 이끌고 대내(大內)로 들어와 을사조약을 체결하였다는 변고를 듣고 협약의 철회와 적신(賊臣)을 죽일 것을 상소하였고, 한일합방이 되자 가야산(伽倻山)으로 들어가 두문불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과재문집』 11권 5책이 있다.
ⓑ 하겸락(河兼洛), 1825(순조 25)∼1904.
조선 말기의 무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우석(禹碩), 호는 사헌(思軒). 진주 출생. 아버지는 한조(漢祖)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기찬(基禶)의 딸이다. 이우빈(李佑贇)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53년(철종 4) 무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857년 수문장으로 기용되었다. 이듬해 부사과(副司果)를 지내고 1860년 훈련원첨정·어영파총(御營把摠) 등을 역임하고, 1862년 거제도호부사로 나갔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에는 순무사중군(巡撫使中軍) 이용희(李容熙)의 종사관이 되어 난리를 수습하였고, 1870년 신도진절제사 재임시에는 중국의 어선이 경계를 침범하여 어로하는 것을 나포하여 주민의 어업권을 보호하였다. 또한, 강계도호부사 겸 청북병마우방어사로 있을 때에는 회재서원(晦齋書院)의 철폐를 막았고, 민폐를 제거하는 등의 선정을 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향리의 화산에 정자를 지어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선현들의 심성에 관한 글들을 모아 「이기집설(理氣輯說)」을 펴내고, 조상들의 제사에 대한 기록을 모아 「봉선록(奉先錄)」을 편찬하였다. 저서로는 『사헌집』 4권이 있다.
ⓒ 하용제(河龍濟), 1854. (6. 29)~1919. 11. 8
경남 산청(山淸)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창숙(金昌淑) 등이 유림(儒林) 대표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유림에 한사람으로 서명하는 등 항일운동을 하다 세칭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이라고 불리우는 이 거사는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유림과 곽종석(郭鍾錫)을 중심으로 한 영남유림 137명이 참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유림의 항일운동이었다. 파리장서의 요지는 일제가 자행한 명성황후・광무황제(光武皇帝)의 시해와 한국 주권의 찬탈과정을 폭로하면서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들 유림은 김창숙(金昌淑)을 파리로 파견하고자 상해로 보냈으나, 직접 가지는 못하고 이 문서를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로 파리에 파견된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했으며, 국내의 각 향교에도 우송되었다. 그런데 이 일은 경상북도 상주의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1919년 4월 12일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던 송회근(宋晦根)이 피체되면서 발각되었다. 이로써 하용제도 일경에 피체되어 고초를 겪었다. 출옥 후, 그는 모진 고문에 의해 극도로 쇠약해진 가운데에서도 유림들이 주도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참가했으나, 결국 고문의 여독으로 인하여 1919년 11월 8일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종락(河鐘洛), 1895년(고종 32)∼1969년.
일제강점기의 유학자로, 자는 명국(鳴國)이고, 호는 소계(小溪)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고조부는 부호군(副護軍) 하식(河鉽), 증조부는 하범수(河範洙), 조부는 하제명(河濟明)이고, 부친은 하한홍(河漢洪)이다. 외조부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조태환(曺台煥)이며, 처부는 김해허씨(金海許氏) 허근(許根)이다. 그가 어렸을 때 동생이 잘못을 하여 매를 맞자, 자신도 형으로서 살피지 못한 죄가 있다며 대신 맞기를 청하였다. 그때 부친은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病從口入禍從口出]”라는 말을 하며 명심토록 하였다. 1919년 아버지의 명으로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에게 가서 수학하였다. 1939년 부친상을 당하였고, 1941년 모친상을 당하였다. 1955년에는 하씨(河氏) 세보(世譜)를 중간하는 데 힘썼으며, 세묘(世墓)를 세우는 데도 노력하였다. 묘소는 덕곡(德谷) 소태별(小台別) 후강(後岡) 자좌(子坐) 언덕에 있다. 그의 문집으로 『소계선생문집(小溪先生文集)』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