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매 성료! 참여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10월 둘 째 주말(10/10)에 다시 뵙겠습니다!
 
전적류
양장고서
고미술품
근현대미술품
근현대사자료
음악관련자료
기타경매
사랑나눔경매
 
 
HOME > 현장경매 > 제 143 회 > 조선 말기 안동에서 활동한 문신 김홍락(金鴻洛, 1868~1933) 선생 撰書의 [수각중건상량문(水閣重建上樑文)]


[ 제 143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조선 말기 안동에서 활동한 문신 김홍락(金鴻洛, 1868~1933) 선생 撰書의 [수각중건상량문(水閣重建上樑文)]
경매번호  143-181 시작가  10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약시 예약응찰금액의 20%를 경매 1일전까지 예치하셔야 예약응찰을 하실수 있습니다.

- 입금 계좌 안내 -
[국민은행 962701-01-220478 조현제]
[농협 150103-52-008306 조현제]
[대구은행 028-07-011105-3 조현제]
[신한은행 110-200-908887 조현제]
예약하기



<내용> 조선 말기 안동에서 활동한 문신 김홍락(金鴻洛, 1868~1933) 선생 撰書의 [수각중건상량문(水閣重建上樑文)]으로 상태 양호하다.
<크기> 99×29.5cm

<참고>
ⓐ 김홍락(金鴻洛), 1868~1933
조선 말기 안동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우경(羽卿), 호는 모계(某溪).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진억(金鎭嶷)이고, 어머니는 여산송씨로 송양신(宋養信)의 딸이다. 1868년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태어났다.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으로, 1884년(고종 21) 동당시(東堂試)에 급제하였으나 취소되었다. 1889년(고종 26) 「관도기(觀到記)」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수업을 받던 중 지어 올린 글이 우수작으로 뽑혀, 왕이 『대학(大學)』 한 부를 하사하였다. 1894년(고종 31) 문과에 급제한 뒤 더욱 덕성을 도야하고 의리를 강론하다가 스승인 김흥락이 세상을 떠나자,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907년(순종 1) 비서감랑(秘書監郞)으로 임명되어 영친왕(英親王) 가례(嘉禮)에 제서관(製書官)으로 일을 한 뒤에 홍문관시독(弘文館侍讀)으로 승진되었다. 이후 비서관기주(秘書官記注)로 옮겼다가 곧 선조관(宣詔官)이 되어 통정(通政)의 품계에 올랐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두문불출하고 독서로 소일하며 여생을 마쳤다.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만운산에 있다.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낙암정(洛巖亭)의 「낙암정중수기」를 지었는데, 지금도 현판이 걸려 있다.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는 김홍락과 관련된 유적 한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우신대(友信臺)’라는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곳은 단발령에도 굴하지 않고 항거한 안승국(安承國, 1871~1950)이 김홍락, 류동준(柳東濬), 권상익(權相翊), 김영익(金永翼), 김규환(金奎煥) 등 당시의 지사들과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우신계를 조직하여 교유하던 곳으로 1939년 삼월회와 회와(晦窩) 이혁연(李赫淵)이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여기서 ‘우신’이라는 말은 『논어(論語)』의 ‘붕우와 더불어 사귐에 성실하라[交友以信]’는 문구에서 취한 듯하다.
ⓑ 박응상(朴應祥), 1526(중종 21)∼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중수(仲綏), 호는 낙옹(樂翁). 아버지는 형조좌랑 박민수(朴敏樹)이며,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참봉 박경신(朴景信)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닦아 1549년(명종 4) 무과에 급제, 우후(虞候)·첨사(僉使) 등이 되었다가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1572년(선조 5) 대정현감이 되고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겸하였다. 4년간 임지에 있으면서 기강을 바로 세우고 흉년에 기민을 구제하며 세금과 부역을 경감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어 군민들이 선정비를 세워 그 덕을 칭송하였다. 만년에는 낙옹정(樂翁亭)을 지어 위기학(爲己學: 자기를 닦는 학문)에 힘쓰면서 후진을 가르쳤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몸이 늙어 출전하지 못함을 비관하여 굶주리다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