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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43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聖上十七年(高宗17年, 1880) 이돈우(李敦禹) 선생이 撰書한 임란공신 전제(全霽, 1558~1597) 선생의 [영수전공유집서(英叟全公遺集序)] 1軸
경매번호  143-438 시작가  7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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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聖上十七年(高宗17年, 1880) 이돈우(李敦禹) 선생이 撰書한 임란공신 전제(全霽, 1558~1597) 선생의 [영수전공유집서(英叟全公遺集序)] 1軸으로 草溪거주 全州人 전제(全霽, 1558~1597) 선생의 문집 序이며 보존 상태 양호하다. 
<크기> 143×28.5cm

<참고>

ⓐ 전제(全霽), 1558~1597

草溪거주 全州人, 字는 시적(時適), 호는 영수(英叟), 전두환대통령의 14대조,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 첨정을 지내고, 선조(宣祖) 24년(1591) 신묘(辛卯) 별시(別試) 을과(乙科) 30위(31/300) 급제 1591년(선조 24) 영산현감으로 나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배대유(裵大維), 이도유(李道攸)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박진, 정암 등지의 싸움에서 대첩을 거두었고, 화왕성 전투에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크게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선봉으로 도산에서 싸우다가 순절 하였다. 사림들의 장계로 1880년(고종 17) 호조참판에 추증, 도계서원에 제향되었다.

 이돈우(李敦宇), 1801(순조 1)∼1884(고종 21).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돈영(敦榮). 자는 범약(凡若) 또는 윤공(允恭), 호는 신게(莘憩). 득일(得一)의 손자로, 첨지중추부사 상두(相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사선(金思善)의 딸이다. 상형(相衡)에게 입양되었다. 1827년(순조 27)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홍문록에 올랐으며, 곧 홍문관제학이 되었다. 1831년 도청(都廳)을 역임한 뒤, 1836년 이조참의가 되고 이듬해 집의가 되었다. 그뒤 1840년(헌종 6) 이조참판에 오르고 이듬해 전라도관찰사로 나가 치적을 쌓았다. 1843년 중앙으로 돌아와 이조참판에 다시 등용되고 1845년 대사헌이 되었다. 그뒤 형조판서·대사헌·한성부판윤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으며, 1849년(철종 즉위년)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1853년 공조판서·판의금부사를 거쳐 1855년 예조판서·병조판서를 지냈다. 이듬해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를 거쳐 1857년 다시 판의금부사를 지냈다. 1858년 이조판서가 되고, 1860년 형조판서·공조판서를 역임한 뒤 다시 형조판서가 되었으며, 이듬해 다시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1861년 경상도관찰사로 나아가 각지에서 발생하는 민란수습에 전력하다가 중앙으로 돌아와 이듬해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1863년(고종 즉위년) 국장도감(國葬都監)의 제조로 국장도감의 애책문제술관(哀冊文製述官)으로서의 구실을 다하였다. 1864년 좌참찬·판의금부사·호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실록찬수당상으로 《철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1865년(고종 2) 호조판서·부묘도감제조, 영건도감제조(調)로 경복궁을 중건할 때 공사를 감독했고 1866년 다시 제조·호조판서를 지냈다. 그뒤 1874년 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으로 세자를 보필하였고, 이듬해 좌찬성으로 전문서사관(篆文書寫官)의 임무를 수행한 뒤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이어 1882년 대제학이 되어 회권(會圈)에 참여하였다. 비록 일생을 관직에서 보냈지만, 항상 청백한 것을 좋아하여 연꽃을 사랑한다는 〈연설보 蓮說補〉를 지어 자신의 뜻을 펼쳤다. 저서로는 《갑고 甲藁》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