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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43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독립운동가 간찰 유동환(柳東煥) 선생 3점, 서효원(徐孝源) 선생 1점, 김세동(金世東) 선생 1점, 상진(尙鎭) 등 4人의 간찰 6점 일괄
경매번호  143-456 시작가  30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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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독립운동가 간찰 유동환(柳東煥) 선생 3점, 서효원(徐孝源) 선생 1점, 김세동(金世東) 선생 1점, 박상진(朴尙鎭) 선생 1점 등 4인의 간찰 6점 일괄으로 상태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크기> 84×25cm 등
<참고> 
ⓐ 유동환(柳東煥. 1885. 1. 20 ~ 1972. 8. 28) 선생 간찰3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신으로 1919년 3월 21일 안동 임동면(臨東面) 중평리(中平里)의 편항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소식이 전해지자 이곳에서는 유동수(柳東洙), 유연성(柳淵成), 이강욱(李康郁), 박재식(朴載植), 유교희(柳敎熙), 홍명성(洪明聖), 유곡란(柳谷蘭) 등이 주도하여 편항장날을 기해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로 정한 장날이 되자 그는 장터에 모인 1,0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2명의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주동자인 유연성과 배태근을 잡아가려 하자 시위 군중은 이들을 쫓아버리고 주재소로 가서 기물을 부수고 서류를 파기하였다. 경찰이 달아난 뒤에도 군중들은 주재소 앞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새벽 3시까지 시위를 계속하다 해산하였다. 날이 밝자 마을을 수색하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서효원(徐孝源. ?~1897. 8. 6) 선생 간찰1점,
경북 청송(靑松) 출신 독립운동가, 경북 청송에서 거의한 심성지(沈誠之)의진에 참여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하였다. 1896년 1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서 군기(軍器)를 모집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이에 고무된 유림은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청송의 향교(鄕校) 유생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지를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신(徐孝信)을 소모장에 임명하였는데 이때 서효원도 의진에 참여하여 백의종사로 선임되었다. 곧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로 임명되었다. 이어 심성지의진은 군량을 수합하고 군사를 소모하여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군세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이윽고 같은 해 4월 2일 김대락이 이끄는 심성지의진의 주력부대는 인근지역의 김상종(金象鍾)의진 및 김하락(金河洛)의진과 연계하여 감은리(甘隱里) 뒷산에서 적군과 조우하여 교전 끝에 적군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896년 4월 심성지의진은 영덕의진을 지원하는 등 인근지역의 의진과 연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임금의 해산 조칙(詔勅)에 따라 부득이 해진(解陣)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김세동(金世東. 1870. 5. 14 ~ 1942. 8. 2) 선생 간찰1점,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전개되고 있던 무렵, 정관식(鄭寬植)으로부터 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파리에 가서 일제 식민 통치의 부당성을 알리자는 권유를 받았다. 이 제의에 적극 찬성하여 함께 떠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던 중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상진(尙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