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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48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초계문신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고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순조의 國舅가 된 김조순(金祖淳)의 戊子年(1828) 간찰
경매번호  148-299 시작가  10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약시 예약응찰금액의 20%를 경매 1일전까지 예치하셔야 예약응찰을 하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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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초계문신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고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순조의 國舅가 된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戊子年(1828) 간찰로 부분 얼룩, 모서리 여백부 약간 손상 외 본문 상태는 양호하다.
<크기> 46×36.5cm

<참고> 김조순(金祖淳. 1765(영조 41)∼1832(순조 32))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안동.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 순조의 장인으로, 영의정 창집(昌集)의 4대손이며 아버지는 부사 이중(履中)이다.
1785년(정조 9) 약관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이 되고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어 강원도·황해도·함경도지방의 수령·찰방 중에 겸사(兼史) 1명을 두어 그 지방 요속(謠俗)을 채록하여 시정기(時政記)에 수록하도록 할 것을 건의, 실시했다. 1788년 규장각의 대교(待敎)때 당시 시·벽파(時僻派)싸움에 중립을 지키며 당쟁을 단호히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1789년 동지 겸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이조참의·검교·직각을 거쳐 1800년 보덕에 제수되었다. 순조 즉위 후 부제학·행호군(行護軍)·병조판서·이조판서·선혜청제조 등 여러 요직이 제수되었으나 항상 조심하는 태도로 사양하였다. 1802년에 양관 대제학 등을 거쳐 딸이 순조의 비(純元王后)로 봉해지자 영돈령부사(領敦寧府使)로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에 봉해지고, 이어 훈련대장·호위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선혜청제조로 친위병의 수효가 적다고 하여, 철폐된 장용영(壯勇營)의 군사로 충당하도록 주청하여 시행했다. 1814년 금위대장, 1826년 양관 대제학이 되고, 1827년 왕의 관서지방 목욕행을 호종하였다가 서하(西下)지방의 은밀한 민간실정을 보고하여서, 경외(京外)각 아문의 절미(折米)·형정(刑政)·인사(人事)·대동미 등 어려운 실정을 정리하게 하였다. 그뒤 실권있는 직책은 맡지 않고, 제조직과 영돈령부사로 있다가 죽었다. 어릴 때부터 기량과 식견이 뛰어났으며 성격이 곧고 밝아서 정조의 사랑을 받고 왕세자의 보도(輔導)를 맡았고, 국구(國舅)가 된 뒤로는 왕을 보필하여 군덕(君德)을 함양시키는 일에 진력하였다. 그러나 요직이 제수될 때마다 사양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권세를 누리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시벽당파에 몰리지 않으려는 노력과 세도의 풍을 형성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척족 세력들이 후세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기반을 조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장이 뛰어나 초계문신이 되었고, 비명·지문·시책문·옥책문 등 많은 저술을 남겼고 죽화(竹畵)도 잘 그렸다. 저서로 《풍고집 楓皐集》이 있다. 정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여주의 현암서원(玄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