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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67 회 ] 현장경매 물품의 상세 정보입니다.]


용주사 주지 姜大蓮이 京畿道 産業科長에게 준 증정기가 있는 용주사판 후쇄 목판본 [불설대부모은중경(佛說大父母恩重經)] 單冊
경매번호  167-346 시작가  500,000 원

한옥션경매에서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출품물건에 대한 “예약경매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약시 예약응찰금액의 20%를 경매 1일전까지 예치하셔야 예약응찰을 하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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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용주사판 목판본 [불설대부모은중경(佛說大父母恩重經)] 單冊으로 내지에 昭和十四年(1939) 용주사 주지 姜大蓮이 京畿道 産業科長에게 준 묵서 증정기가 있다. 후쇄의 특성상 판의 마멸로 인한 다소 흐린 인출 상태이나 책의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크기> 20×29cm

<참고> 강대련(姜大蓮. 1875년(고종 12) 9월 11일∼1942년 4월 1일)
일제 강점기 불교인. 자호는 명고산인(鳴鼓山人)이며, 호는 금허(錦虛)‧송거(松居)‧대련(大蓮)이고, 법명은 보영(寶英), 창씨 개명한 이름은 위원형(渭原馨)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진주군(晉州郡) 진주면(晉州面)이다. 1901년(광무 5) 해은암(海恩庵) 터에 해광전(海光殿)을 신축하는 비용으로 고종의 계비인 순헌비(淳獻妃)로부터 만금(萬金)을 하사받았다. 1887년에 장안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1905년(광무 9) 명진학교를 졸업한 후 해인사 대장경판 보수 감독자‧원종 서무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06년(광무 10)에는 해인사 대장경판을 보수하고 불경 1,400권을 간행하는 비용으로 순헌비로부터 6천 원을 하사받았다. 간행한 팔만대장경을 금강산의 정양사(正陽寺)에 봉안하였다. 1911년‧1914년에는 각각 대본산 용주사와 평안북도 철산군 국청사에서 주지가 되었다. 1915년에 불교진흥회의 부회주를 지냈으며, 불교계 통합기구인 30본산연합사무소의 위원장 및 상치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불교중앙학림 학장이 되었다. 1917년 9월 조선총독부 후원으로 일본불교시찰단원이 되어 일본을 시찰하면서, 데라우치[寺內正毅]소향식(燒香式)에 참가하였다. 1920년에는 용산 주둔 일본군 79연대에 참관하였으며, 1922년에는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의 사교이사가 되었다. 1929년부터 조선불교대회의 부의장을 지냈으며, 1935년에는 조선불교 심전개발사업촉진발기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1937년에는 총본산 건설 고문이 되어 일본군 국위선양과 무운장구 기원 법요식을 봉행하였다. 또 1937년 7월부터 1941년 12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황군 위문금을 3,700원 헌금하였다. 1940년에 창씨 개명을 하였다. 1941년 12월 20일부터 22일까지 용주사 33개 본‧말사 미‧영 항복 기도를 봉행하였다. 1942년 4월 1일 사망할 때까지 용주사 주지를 지냈다. 일본의 정책에 협조한 공로로 1928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소화(昭和)대례기념장을, 1935년에는 조선총독부로부터 시정 25주년 기념 은배 1조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