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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번호. BECA78]
芝崗齋活印 木活字本 [안악이씨세보(安岳李氏世譜)] 庚子(1900)譜 3卷 3冊 완질
시작가 : 450,000 원
현재가 : 450,000 원
입찰단위 : 1,000 원
결재방법 : 무통장입금
경매기간 : 2017/11/21 17시52분 ~ 2017/11/29 17시52분
남은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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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제한 : 모두참여
입찰수 : 0 건
재등록횟수 : 73회 (1회 이상이면 재경매임)
판매자 ID : arammaru  
물품등록 IP : 180.228.♥.129
판매지역 : 전국
배송방법 : 택배, 판매자부담

<내용> 庚子譜 3卷 3冊 완질본. 권두에 庚子(1900)立春日八溪鄭載奎(1843~1911)謹書의 序, 乙亥譜, 己卯譜 등 舊譜序, 묘지명, 庚子(1900)立春日八溪鄭載奎述의 孺人薛氏墓誌銘, 凡例, 乙亥跋文. 譜末에 歲庚子(1900)仲春芝崗齋活印 판각기. 첫책 첫머리 상단 여백부, 2권 후미 모서리 약간 갉힘 외 기타 상태 양호. 22×34cm
<참고> 安岳李氏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本貫由來)
 
 안악 이씨 (安岳 李氏)의 시조(始祖) 이 진 (李 震)은 중국(中國) 농서(?西) 사람으로 기원전 108년(한무제 원봉 3)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우거왕(右渠王)이 한(漢)에 불공(不貢)하여 무제(武帝)가 무장(武裝) 공손수(公孫遂)를 시켜 왕검성(王儉城)을 토평(討平)할 때 부장(部將)으로 출전하여 공(功)을 세워서 대장군(大將軍)에 올라 낙랑후 (樂浪候)에 봉해지고 낙랑태수(樂浪太守)로 한사군(漢四郡) 설치의 대명(大命)을 완수했다.
그후 그의 증손(曾孫) 천보(天寶)는 한(漢)나라 선기사 대장군(善騎射大將軍)으로 흉노토벌(匈奴討伐)에 공(功)을 세워 양산후(楊山候)로 봉해져서 낙랑태수(樂浪太守)를 지냈으므로 양산 이씨(楊山 李氏)로 칭관(稱貫)하였다.
그뒤 낙랑(樂浪)이 망하자 후손들은 고구려(高句麗)?신라(新羅) 등지로 이거(移居)하며 대(代)를 이어오다가 후손 극규 (極奎 : 중시조)가 고려개국공신(高麗開國功臣)으로 양산백 (楊山伯)에 봉해지고 안악(安岳)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았으므로 그 곳에서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본관(本貫)을 안악 (安岳)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繼承)해왔다.
가문을 빛낸 인물(人物)로는 극규(極奎)의 10세손 위(魏)가 고려 때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匡門下侍中)으로 양산백(楊山伯)에 봉해졌고, 후손 견(堅)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홍건적(紅巾賊)의 난이 일어나자 상장군(上將軍)으로 출정하여 개성부(開城府)에 있는 신 부(辛 富)와 함께 분전하다가 장렬하게 순절하여 가문(家門)을 빛냈다.
관(灌)의 아들 계을(桂乙)이 고려 말에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를 역임한 후 고려가 망하자 울분을 참지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그의 아들 신(晨 : 해명 양소)은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節義)를 지켰다. 한편 세종(世宗) 때 안악 군수(安岳郡守)를 지낸 구관(九寬)은 뒤에 벼슬이 예조 참판(禮曺參判)에 이르렀고 만년에 충북 괴산으로 낙향하여 터를 잡았다.
그밖의 인물로는 중종반정(中宗反正) 공신(功臣)에 오른 심(심)이 하원군(河原君)에 봉해졌고, 희순(希舜)은 남원부사(南原府使)를 역임한 수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을 거쳐 호당(湖堂)에 들어가 문명(文名)을 떨쳤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화(禍)를 입었다.
임진왜란 때 옥천(沃川)에서 왜적을 격파했던 잠(潛)은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진주성(晉州城)을 지키다가 혈전(血戰) 끝에 장렬하게 순절했으며, 응순(應順)은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를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되고 오위도총관(五衛都摠管)에 올라 익흥군(益興君)에 봉해져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오른 정립(挺立)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악 이씨(安岳李氏)는 남한(南韓)에 총 1,980가구, 7,97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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